비트코인 백서 읽기 길잡이

답장이 거의 없던 메일 한 통
2008년 10월 31일 금요일 18:10(UTC)이었습니다.
금융위기가 가장 무섭게 번지던 때였습니다. 리먼 브라더스가 무너진 지 겨우 6주 만이었고, 각국 정부는 은행을 살리려고 막대한 자금을 서둘러 쏟아붓고 있었습니다. 그 한가운데에서 metzdowd.com이 운영하던 Cryptography Mailing List에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이름으로 서명된 메일 한 통이 도착했습니다. 제목은 “Bitcoin P2P e-cash paper”였습니다.
메일은 한 문장으로 시작했습니다. “I've been working on a new electronic cash system that's fully peer-to-peer, with no trusted third party.” 그리고 9쪽짜리 논문의 링크가 붙어 있었습니다.
답장은 많지 않았고, 그중 상당수는 회의적이었습니다. 기술적인 세부 사항을 캐묻는 사람도 일부 있었습니다. 그 메일링 리스트의 구성원들은 이미 수많은 디지털 화폐 제안을 보아 왔고, 대부분은 문서 밖으로 나오지 못했습니다. 이 메일이 지금도 이어지는 역사의 출발점이 되리라고 짐작한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입니다.
18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이 논문을 다시 읽었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논증의 방식이었습니다. 각 절은 정확히 한 가지 문제를 다루고, 그 답은 자연스럽게 다음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12개 절을 모두 읽고 나면 저자를 따라 어려운 문제 하나를 처음부터 끝까지 풀어 본 듯한 느낌이 듭니다.
이 길잡이는 기술 배경이 없는 독자를 위해 썼습니다. 먼저 피해 갈 수 없는 몇 가지 용어를 설명하고, 이어서 논문을 한 절씩 읽어 나갑니다. 절마다 세 가지를 짚습니다. 무엇을 해결하려 하는지, 어떻게 해결하는지, 그리고 어떤 새로운 문제를 남기는지입니다. 원문은 영어판과 중국어판으로 기원 전시실의 ‘백서의 벽’에 걸려 있습니다. 이 글을 먼저 읽고 나면 원문이 훨씬 수월하게 읽힐 것입니다.
읽기 전에 알아 둘 여섯 단어
백서는 짧지만 기술 용어가 꽤 많이 나옵니다. 다음 여섯 가지만 정리해 두면 나머지는 한결 쉬워집니다.
해시: 데이터의 지문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단어 하나부터 책 한 권까지 어떤 내용이든 해시 함수에 넣으면 길이가 일정한 짧은 문자열이 나옵니다. 쉼표 하나만 바꿔도 지문은 완전히 달라지지만, 지문을 보고 원래 내용을 거꾸로 알아낼 수는 없습니다. 비트코인은 무언가가 바뀌었는지 확인할 때 곳곳에서 해시를 사용합니다.
개인 키와 공개 키: 짝을 이루는 한 쌍의 디지털 열쇠입니다. 개인 키는 혼자만 간직하고, 공개 키는 누구에게나 알려도 됩니다. 잠긴 우편함을 떠올려 보십시오. 공개 키는 누구나 알아도 되는 우편함의 주소이고, 개인 키는 그 우편함을 여는 열쇠로 오직 당신만 가지고 있습니다.
디지털 서명: 개인 키로 어떤 내용에 “서명”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짝이 되는 공개 키로 당신이 서명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지만, 개인 키가 없으면 아무도 그 서명을 위조할 수 없습니다. 복제할 수 없는 자필 서명과 같습니다.
블록과 블록체인: 비트코인의 장부는 한 쪽씩 기록됩니다. 한 쪽 한 쪽을 블록이라고 부르며, 블록마다 여러 건의 거래가 담깁니다. 각 쪽에는 바로 앞 쪽의 지문이 적혀 있어 모든 쪽이 순서대로 이어지고, 이렇게 이어진 전체가 블록체인입니다.
노드: 장부 사본을 보관하고 검증하면서 비트코인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컴퓨터입니다. 누구나 운영할 수 있습니다.
작업증명(PoW): 끊임없이 추측을 되풀이해야만 풀 수 있는 수학 퍼즐입니다. 답을 찾으려면 막대한 계산이 필요하지만, 다른 사람이 그 답을 확인하는 데는 한순간이면 충분합니다. 비트코인은 이것으로 장부의 다음 쪽을 누가 추가할지 정합니다.
이 여섯 단어를 알았으니 이제 시작해 보겠습니다.
1절 · 서론: 비용에서 출발하다
내용: 오늘날 거의 모든 온라인 결제는 은행이나 결제 회사 같은 “신뢰할 수 있는 제3자”가 중간에 서야 이루어집니다. 나카모토는 이러한 의존에 대가가 따른다고 지적합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온라인에서 물건을 사면 대개 결제한 뒤에도 환불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구매자에게는 보호 장치이지만 판매자에게는 위험입니다. 누군가 물건을 받고도 받지 못했다고 거짓 주장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판매자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고객에게 더 많은 정보를 요구하고, 사기로 인한 손실 일부를 떠안습니다. 이런 비용은 결국 모든 상품의 가격에 더해지고, 소액 결제를 채산이 맞지 않게 만듭니다.
현금에는 이런 문제가 없습니다. 돈을 건네고 물건을 받으면 결제는 끝납니다. 그때까지 온라인에서는 같은 일을 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남는 질문: 제3자 없이도 현금처럼 그 자리에서 끝나는 온라인 결제가 가능할까요? 그리고 제3자가 없다면 전자 코인의 주인은 누가 정할까요?
서론의 어조는 놀라울 만큼 차분합니다. 비용에서 출발해 한 걸음씩 논리를 쌓아 가며, 풀어야 할 기술 문제를 정리하는 엔지니어의 글처럼 읽힙니다.
2절 · 거래: 코인은 서명의 사슬
해결하려는 문제: 장부를 맡아 줄 은행이 없다면, 코인이 내 것임을 어떻게 증명할까요?
나카모토의 답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그는 전자 코인을 “an electronic coin as a chain of digital signatures”, 곧 디지털 서명이 이어진 사슬로 정의합니다.
계속 주인이 바뀌는 양도 증서 한 장을 떠올려 보십시오. 처음에는 “이 코인은 A의 것”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A가 B에게 코인을 넘길 때는 맨 아래에 “B에게”라고 쓰고 서명합니다. B가 C에게 넘길 때도 똑같이 합니다. 누구든 이 증서를 위에서 아래로 읽어 보면, 넘겨질 때마다 직전 주인이 서명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기술적으로 여기서 말하는 “서명”은 앞에서 설명한 디지털 서명입니다. 현재 주인이 자신의 개인 키로, 직전 거래의 해시와 다음 주인의 공개 키에 서명합니다.
이것으로 많은 사람이 품어 온 질문, 곧 비트코인은 실제로 어디에 있느냐는 질문에도 답할 수 있습니다. 비트코인은 블록체인에 기록되어 있으며, 이전 내역을 한 번 한 번 따라갈 수 있는 이 서명의 사슬이 바로 그 실체입니다. “비트코인을 소유한다”는 것은 사실 다음 이전에 서명할 수 있는 개인 키를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남는 문제: 서명은 넘겨주었다는 사실을 증명할 뿐, 부정행위까지 막지는 못합니다. A가 “B에게”라고 적은 증서와 “C에게”라고 적은 증서에 각각 서명해 같은 코인을 두 번 팔 수 있습니다. B와 C는 각자 자기 증서를 확인하고 진짜 서명이라고 여길 것입니다. 이것이 이중 지불 문제이며, 논문의 나머지 대부분은 이 문제를 다루는 데 쓰입니다.
3절 · 타임스탬프 서버: 거래에 순서 매기기
해결하려는 문제: A의 속임수를 잡아내려면 어느 거래가 먼저였는지만 알면 됩니다. 먼저 이루어진 거래는 유효하고 나중 거래는 무효입니다. 그런데 중앙 기관이 없다면 순서는 누가 정할까요?
나카모토는 이미 있던 아이디어인 타임스탬프 서버에서 출발합니다. 최신 거래 묶음을 주기적으로 모아 시각을 찍고, 그 도장을 모두가 볼 수 있게 공개하는 공증인을 떠올려 보십시오. 핵심은 새 도장마다 직전 도장의 지문이 들어간다는 점입니다. 장부의 각 쪽이 바로 앞 쪽의 지문을 옮겨 적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도장들은 사슬처럼 이어집니다. 누군가 중간의 한 쪽을 몰래 고치면 그 쪽의 지문이 바뀌고, 뒤따르는 모든 쪽에 옮겨 적힌 지문과 맞지 않게 되어 위조가 곧바로 드러납니다.
다만 들키기 쉽다는 것과 실행하기 어렵다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뒤따르는 모든 쪽을 다시 베껴 쓸 수 있는 사람이라면 여전히 들키지 않고 넘어갈 수 있습니다. 실제로 위조를 극도로 어렵게 만드는 것은 다음 절에서 소개하는 작업증명입니다.
남는 문제: 현실의 공증인은 중앙 기관이지만, 비트코인은 중심을 전혀 두지 않으려 합니다. 모두가 동등한 네트워크에서 도장은 누가 찍을까요?
4절 · 작업증명: 투표에 비용을 매기다
해결하려는 문제: 공증인이 없으니 다음 쪽에 누가 도장을 찍을지 네트워크 전체가 함께 정해야 합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방법은 다수결 투표입니다.
그러나 온라인 투표에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습니다. 신원을 만드는 데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논문은 다수결이 “one-IP-address-one-vote”(IP 주소 하나당 한 표) 방식이라면 IP를 대량으로 할당받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든지 결과를 뒤집을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가짜 계정 1만 개를 만든 사람이 1만 표를 행사하는 온라인 설문과 같습니다.
따라서 투표권은 공짜로 만들어 낼 수 없는 무언가에 묶여야 합니다. 나카모토가 고른 것은 연산 능력이었습니다.
방식은 이렇습니다. 다음 쪽에 도장을 찍고 싶은 사람은 먼저 수학 퍼즐을 풀어야 합니다. 요령은 없습니다. 충분히 작은 숫자가 나올 때까지 주사위를 계속 굴리듯, 추측을 거듭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입니다. 가장 먼저 답을 찾은 사람이 그 쪽을 추가할 권리를 얻어 답을 공개하고, 다른 사람들은 그 답을 한순간에 확인할 수 있습니다.
추측에는 실제 전기와 실제 장비가 들기 때문에, 자신이 가진 연산 능력이 사실상 자신의 표 수가 됩니다. 가짜 계정은 쓸모가 없습니다. 가짜 계정은 퍼즐을 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비트코인은 규칙 하나를 더합니다. 모두가 “가장 긴” 체인, 더 정확히 말하면 가장 많은 작업이 누적된 체인을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다수의 결정입니다. 또한 장비가 빨라지고 참여자 수가 달라져도 블록이 평균적으로 일정한 속도, 대략 10분에 하나씩 나오도록 퍼즐의 난이도가 자동으로 조정됩니다.
이제 3절이 남긴 걱정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한 쪽을 고치려는 사람은 뒤따르는 모든 쪽을 다시 베껴 쓰고, 쪽마다 퍼즐을 다시 풀어야 하며, 그것도 정직한 참여자 전체를 합친 것보다 빨리 해내야 합니다. 현실적으로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첫 번째 흔한 오해: 논문에는 “proof-of-work is essentially one-CPU-one-vote”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이 문장은 누구나 평등하게 참여할 수 있다는 뜻으로 자주 받아들여집니다. 그러나 맥락 속에서 읽으면, 요지는 투표가 신원을 몇 개 가졌느냐에 좌우되어서는 안 되고 실제 비용을 수반해야 한다는 데 있습니다.
오늘날 채굴은 전용 칩과 대규모 산업 시설이 주도하고 있어 논문 속 모습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 과정은 신뢰의 기계 전시실의 ‘채굴기 진화의 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논문은 투표권을 연산 능력에 묶어야 한다고 주장할 뿐, 그 연산 능력이 결국 어떻게 분포할지는 예측하지 않습니다.
5절 · 네트워크: 한 쪽도 안 되는 분량
해결하려는 문제: 부품은 모두 갖추어졌습니다. 그렇다면 네트워크는 실제로 어떻게 돌아갈까요?
나카모토에게 필요한 것은 여섯 단계뿐입니다.
- 누군가 새 거래를 만들어 모든 노드에 전파합니다.
- 각 노드는 받은 새 거래들을 후보 블록에 모읍니다.
- 각 노드는 자기 블록의 작업증명 퍼즐을 풀기 시작합니다.
- 가장 먼저 푼 노드가 그 블록을 모든 노드에 전파합니다.
- 다른 노드들은 블록을 검사해, 안에 든 모든 거래가 유효하고 이미 쓰인 것이 아닐 때만 받아들입니다.
- 노드들은 그 블록 위에서 다음 블록 작업을 시작하는 것으로 블록을 받아들였음을 나타냅니다.
두 노드가 거의 같은 순간에 퍼즐을 풀면, 네트워크에는 잠시 길이가 같은 체인 두 개가 생깁니다. 각 노드는 먼저 전달받은 쪽에서 작업을 이어 갑니다. 다음 블록이 나오면 더 길어진 체인이 이기고, 다른 체인은 그대로 버려집니다. 노드는 언제나 가장 긴 체인을 올바른 체인으로 여기고 계속 이어 붙입니다.
오늘날까지 돌아가고 있는 전 세계적 시스템이 한 쪽도 안 되는 분량으로 설명되어 있습니다.
남는 질문: 퍼즐을 푸는 데는 전기와 장비에 돈이 듭니다. 그런데 왜 굳이 이 일을 할까요?
6절 · 인센티브: 정직이 가장 이득이 되도록
해결하려는 문제: 사람들이 참여할 이유를 만드는 것입니다.
답은 보상입니다. 각 블록의 첫 번째 거래는 정해진 양의 새 코인을 만들어 퍼즐을 푼 사람에게 줍니다. 이는 전기와 장비에 쓴 비용을 보전해 주며, 새 비트코인이 유통에 들어오는 유일한 경로이기도 합니다. 자원을 들여 새 코인을 세상에 내놓는 모습이 땅에서 금을 캐내는 일과 닮았기 때문에, 이 일은 훗날 채굴로, 참여자는 채굴자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신규 발행이 끝나면 거래 수수료가 그 역할을 이어받습니다.
이 절의 백미는 후반부에 있습니다. 나카모토는 정직한 노드 전체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연산 능력을 가진 공격자를 상정하고, 그가 내릴 선택을 차분히 따져 봅니다. 공격자는 그 힘으로 자신의 결제를 몰래 되돌리는 속임수를 쓸 수도 있고, 정직하게 채굴해 새 코인을 벌 수도 있습니다. 나카모토는 규칙을 지키는 편이 더 이득이라고 결론 내립니다. 속임수로 얻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새 코인을 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어떤 공격이든 비트코인에 대한 신뢰를 흔들어, 그가 이미 가진 코인의 가치까지 끌어내릴 것입니다.
다시 말해 비트코인의 보안은 모두가 선량하다는 전제에 기대지 않습니다. 규칙을 따르는 것이 가장 이익이 되도록 규칙이 설계되어 있습니다. 앞의 절들이 이 시스템이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면, 이 절은 사람들이 왜 굳이 이 시스템을 돌리려 하는지를 설명합니다. 열린 네트워크에서는 이쪽이 더 어려운 질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신규 발행이 끝난 뒤 수수료만으로 충분한 연산 능력을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을지는 나중에 제기된 질문이며, 지금도 논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7절 · 디스크 공간 회수: 장부가 커지면 어떻게 할까
해결하려는 문제: 모든 거래는 장부에 영원히 남기 때문에 장부는 계속 커지고, 언젠가는 일반 컴퓨터로 감당할 수 없게 될 수 있습니다.
나카모토의 해법은 머클 트리라는 구조를 이용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한 블록에 든 모든 거래를 둘씩 짝지어 쌍마다 지문을 계산합니다. 다시 그 지문들을 둘씩 짝지어 새 지문을 계산합니다. 이렇게 한 층씩 위로 합쳐 나가 마지막에 지문 하나가 남으면, 그것을 머클 루트라고 부릅니다. 블록 자체의 지문에는 이 루트 하나만 포함하면 됩니다.
그 덕분에 어떤 코인의 최신 거래가 충분히 많은 블록 아래에 묻히고 나면, 그 이전에 이미 쓰인 거래들은 지워도 됩니다. 트리에서 꼭 필요한 지문 몇 개만 남겨 두어도 체인은 여전히 온전히 검증할 수 있습니다. 나카모토는 각 블록의 “헤더”만 보관하면 1년에 몇 메가바이트면 충분하다는 계산까지 해 두었습니다.
8절 · 간편 결제 검증: 장부 전체가 없어도 된다
해결하려는 문제: 압축하더라도 일반 사용자는 장부 전체를 보관하고 검증하고 싶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자신이 받은 결제가 기록되었는지만 간단히 확인할 수는 없을까요?
할 수 있습니다. 사용자는 블록 헤더만 보관하다가, 필요할 때 네트워크에 짧은 증명을 요청해 자신의 거래가 특정 블록의 머클 트리 안에 들어 있음을 확인합니다. 택배 조회와 비슷합니다. 택배 회사의 전체 시스템에 접속하지 않아도 운송장 번호만 있으면 내 물건이 오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많은 경량 지갑은 그 설계가 이 아이디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논문은 그 대가도 분명히 밝힙니다. 이 방식은 정직한 노드가 네트워크의 다수를 차지한다는 전제에 기대며, 직접 풀 노드를 운영하는 것보다 안전성이 떨어집니다. 그래서 논문은 결제를 자주 받는 사업자라면 여전히 자체 풀 노드를 운영하는 편이 좋다고 권합니다.
9절 · 가치의 결합과 분할: 비트코인의 “거스름돈”
해결하려는 문제: 코인을 하나하나 따로 보내야 한다면 결제 한 번에 거래가 수백 건 필요할 수도 있어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나카모토의 설계에서는 거래 하나가 여러 개의 입력과 여러 개의 출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50달러 지폐 한 장과 20달러 지폐 한 장을 가지고 60달러를 내야 한다고 해 보십시오. 두 장을 모두 건네면(입력 두 개), 판매자에게 60달러가 지급되고 10달러를 돌려받습니다(출력 두 개, 그중 하나는 자신에게 돌아오는 거스름돈).
비트코인 지갑의 특징 하나도 여기서 설명됩니다. 잔액은 숫자 하나가 아닙니다. 크기가 제각각인, 아직 쓰지 않은 “거스름돈” 여러 조각이 모여 이루어진 것입니다.
10절 · 프라이버시: 익명이 아니라 가명
해결하려는 문제: 장부가 모두에게 공개되어 있다면 모든 거래가 드러나는 것 아닐까요?
전통적인 은행은 외부인에게 장부를 보여 주지 않는 방식으로 프라이버시를 지킵니다. 비트코인은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누구나 검증할 수 있으려면 장부가 공개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나카모토는 다른 길을 택합니다. 장부는 공개하되, 이름 대신 공개 키를 기록하는 것입니다. 외부인은 어떤 주소에서 다른 주소로 돈이 옮겨 가는 것은 볼 수 있지만, 양쪽 주소 뒤에 누가 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증권거래소가 매수자와 매도자의 이름은 밝히지 않은 채 모든 체결 내역을 공개하는 것과 같습니다.
논문은 추가 안전장치로, 결제들이 같은 주인에게 연결되지 않도록 거래마다 새로운 키 쌍을 쓰라고 권합니다.
두 번째 흔한 오해: 많은 사람이 비트코인을 익명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논문 스스로도 입력이 여러 개인 거래는 그 입력들이 같은 주인의 것임을 드러낸다고 경고하며, 주소들은 서로 연결되고 분석되어 결국 실제 인물과 짝지어질 수 있습니다. 논문은 “anonymous”(익명)라는 단어를 쓰지만, 그것이 설명하는 메커니즘은 오늘날 가명이라고 부르는 것에 더 가깝습니다. 체인에 당신의 이름은 없지만, 당신이 한 모든 거래는 남아 있습니다.
11절 · 계산: 수치로 따지는 보안
해결하려는 문제: 그렇다면 이 시스템은 얼마나 안전할까요? 나카모토는 설명에서 그치지 않고 직접 계산합니다.
그는 공격을 하나의 경주로 봅니다. 당신이 결제를 받았고, 그 거래가 블록에 기록되었으며, 그 뒤로 블록이 몇 개 더 추가되었다고 해 봅시다. 이 거래를 되돌리려면 공격자는 그 거래 이전 지점에서 몰래 별도의 체인을 시작해, 정직한 노드들이 계속 이어 붙이는 체인을 따라잡고 앞질러야 합니다.
공격자의 연산 능력이 정직한 노드보다 작은 한, 뒤처진 채 출발할수록 성공 확률은 희박해지며, 그것도 지수적으로 줄어듭니다. 논문은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합니다. 네트워크 연산 능력의 10%를 가진 공격자가 6블록 뒤처진 상태에서 출발하면, 따라잡을 확률은 약 0.024%, 곧 1만 분의 2.4 정도에 불과합니다.
세 번째 흔한 오해: 논문이 제시하는 것은 보장이 아니라 확률입니다. 블록이 쌓일수록 거래가 뒤집힐 확률은 0에 가까워지지만, 엄밀히 말해 0이 되지는 않습니다. 이는 전통 금융의 결제 완결성 개념과는 다릅니다. “6번 확인을 기다리라”는 익숙한 조언도 바로 이런 계산에 근거합니다. 거래 뒤에 블록 6개가 추가되면, 즉 약 1시간이 지나면 뒤집힐 확률은 무시해도 될 만큼 작아집니다.
신뢰의 기계 전시실의 ‘장부 탈취 작전’에서는 공격자의 연산 능력 비율을 직접 조정하면서, 1블록·6블록 뒤처진 상태에서 따라잡을 확률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볼 수 있습니다.
12절 · 결론: 숨기지 않은 전제 조건
결론은 짧습니다. 나카모토는 논증을 되짚습니다. 디지털 서명으로 코인의 소유를 확립하고, 작업증명과 가장 긴 체인으로 이중 지불을 막는다는 것입니다. 그의 결론은 정직한 노드가 연산 능력의 과반을 장악하는 한 이 시스템은 안전하다는 것입니다.
이 결론에는 조건이 붙어 있고, 논문은 그 조건을 분명하게 밝힙니다. 그 후 18년 동안 비트코인을 둘러싼 논쟁의 상당 부분은 결국 그 조건이 현실에서 얼마나 성립하느냐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한 단락으로 읽는 열두 절
백서 전체를 한 단락으로 요약한다면 이렇게 될 것입니다.
은행 없이도 현금처럼 온라인에서 결제하고 싶습니다(1절). 그래서 코인을 서명의 사슬로 정의하지만(2절), 그것만으로는 같은 코인이 두 번 쓰이는 것을 막을 수 없으므로 모두가 인정하는 거래 순서가 필요합니다(3절). 그 순서를 정할 권리는 퍼즐을 풀어 얻고, 표의 무게는 연산 능력으로 매기며, 모두가 작업이 가장 많이 누적된 체인을 따릅니다(4절). 네트워크는 여섯 단계로 함께 장부를 기록하고(5절), 새 코인과 수수료로 참여자를 끌어들여 정직이 가장 이득이 되는 선택이 되게 합니다(6절). 세 가지 공학적 설계로 저장 공간, 경량 검증, 거스름돈 문제를 처리하고(7~9절), 이름 없는 공개 장부로 개방성과 프라이버시의 균형을 잡으며(10절), 공격이 성공할 확률을 계산하고(11절), 이 모든 것이 성립하기 위한 조건을 분명히 밝힙니다(12절).
아홉 쪽을 덮으며
다시 읽으며 우리가 가장 깊이 감동한 것은 이 논문의 절제입니다. 거창한 약속은 하나도 하지 않습니다. 문제를 제기하고, 해법을 내놓고, 그 해법이 성립하는 조건을 정직하게 밝힐 뿐입니다.
18년 전, 별 주목을 받지 못한 메일 한 통이 가리킨 논문이 바로 이것입니다.
아직 원문을 읽어 보지 않았다면 ‘백서의 벽’에 들러 30분만 시간을 내어 첫 쪽부터 아홉째 쪽까지 읽어 보십시오. 이 길잡이를 읽고 나면 생각보다 훨씬 수월하게 읽힐 것입니다.
위의 각 절 요약은 편집부가 원문을 나름대로 읽어 낸 것으로, 번역이 아닙니다. 언제나 원문이 우선합니다. 원문과 다른 점을 발견하시면 editorialoffice@btc.com으로 알려 주십시오.

